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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김영희 추모 1주기 공연 <무트의 창작의 불씨 다시 이어가기> 김태원/ 춤비평

(공연과리뷰)

■ 김영희 추모 1주기 공연 <무트의 창작의 불씨 다시 이어가기> 김태원/

춤비평

지난해 5월 28일 만 62세의 나이로 타계한 무트댄스의 예술감독 김영의(전 이화

여대 무용과 교수)를 추모하기 위한 공연이 올해 같은 날짜에 이화여대 삼성홀에

서 이틀간 있었다. ‘김영희 예술의 꽃을 피우다’란 기획 타이틀로 고인의 예술적 면

모를 보여주면서 사단법인체로 조직의 변화(대표·김정아)를 꾀해 동인제에서 사단

법인체로 보다 공적인 춤집단의 모습을 갖췄다. 그녀가 작고 전 대학에 기반을 갖

춘 동인제 춤 집단으로서 직업무용단 못지 않는 전문성과 강한 결속력을 가졌지만

그녀의 독특한 카리스마와 예술적 분위기-나는 종종 ‘비의적’이라고 했다 – 때문에

정당한 평가를 갖질 못하고 단원들 각각의 개성있는 모습이 얼마쯤 가리워져 있었

다. 1994년에 작명된 춤단체의 독일어면 무트(Mut:용기라는 뜻. 한글로 뭍은 땅이

라는 뜻도 된다.)란 이름 또한 대중이나 춤계에 그런 이미지를 갖게끔했다. 그러나

이젠 이 춤단체의 집단성 못지않게 단원 각자의 개별적인 활동이 점차 증대되리라

본다.

이번에 올려진 네 개의 작품 『몽(꿈처럼)』,『나의대답1』,『아무도 2』,『아리

랑』은 무트댄스 활동의 1기 곧 첫 10년이 되는 2004년의 이전에 만들어진 작품들

이다. 이 중 1987년에 올렸다고 기록된 『나의 대답1』은 그녀가 창무회의 단원으

로 안무했고, 나는 그 작품을 1986년 창무회의 미국 뉴욕 리버사이드 교회의 무대

에서 봤다. 이 작품을 포함, 나머지 세 작품 모두 1005년 이후의 무트댄스 2기 활동

에서 자주 보인바 한시간 길이의 공연들은 아니다. 각각이 보다 훨씬 ᄍᆞᆲ 은 길

이를 갖고 있다.(그렇다고 소품이라고 보기도 힘들다. 오히려 중편이다.) 따라서 관

객들로서는 보기가 편했을 것이다. 동시에 이 춤집단을 처음 대하거나 도는 한두번

대했더라도 잘 몰랐을 경우에는 마치 퍼즐을 맞춰보듯 이 작고한 여성 한국춤-창

작춤-안무가의 감춰진 예술성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고 얼마쯤 짚어보는 기회를 가

졌을지 모른다.

솔직히 나는 편의상 창작춤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김매자·문일지·배정혜·김현자·

채상묵·임학선 이후 창작춤을 본격 예술춤으로, 또 극장춤으로 집요하게 견인한 두

핵심 동력을 공교롭게도 근래 모두 60을 갓넘겨 작고한 한상근과 김영희라 본다.

전자는 문ᄂ일지 주도의 한국춤아카데미와 서울시립무용단의 중추 멤버이자 또

스스로 결성한 춤패 아홉의 리더로 강한 사회비판성과 함꼐 극적 표현성과 실험적

인 퍼포먼스 기법을 활용하여 창작작업에 온몸을 던져 활동했다면, 후자는 창무회

로부터 이어지는 한국창작춤 운동의 정통 맥을 이어받으면서 이화여대 한국무용

과를 기반으로 쉽게 예술적으로 타협하지 않는 표현적이고 상징적인, 일견 예술지

상주의적인 창작의 자세와 정신을 가졌었다. 전자가 남성으로 외향적인 에너지를

발산했다면, 후자는 여성으로 보다 내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불태워 소진시켰다.

그렇지만 모두 60을 넘기면거 안타깝게도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았다.


첫 작품 『몽(꿈처럼)』은 김영희의 안무작중 가장 서구적인 감성을 보여준다. 굳

이 얘기 한다면 독일 표현주의 춤의 대모 마리 뷔그만 춤의 세례를 어느 정도 알게

모르게 받은 것 같고, 또 뷔그만의 제자로 미국에 가서 독특한 조형적인 감각을 띤

현대무용 작품을 발표한 알윈니콜라이를 얼마쯤 떠올릴 수도 있다. 검은 드레스에

머리에 흰 망사로 된 원통형의 모자를 쓰고 불경과 그로테스크한 구음(口音), 그리

고 불연속적인 피아노 선율(박창수 음악)을 타고 김희영 • 김희진 • 조혜림 • 조은지

와 같은 아홉명의 여성 군무진이 신비스럽게 어떤 비밀의식을 치루듯 무대 후면에

서 앞으로 자세를 낮춰 조심스럽게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러면서 한 손가락을 머

리위로 새의 형상같이 뾰족하게 올려 마치 저 높은 곳과 교감하듯, 그리고 자신들

은 그 메신저나 정령인 듯 여겨지게끔 했다. 매끄러운 바이올린의 선율속에 공연의

끝 천장에서 붉은 고추더미가 떨어질 때 그늘은 그 환한 조명의 둘레로 둥글게 모

여들었다. 춤은 일종의 ‘탄생(Birth)’의 주제성을 가지면서 마치 신비스러은 생명 혹

은 영기(盡氣)가 어둠을 뚫고 밝음에 노출되는 그 탯줄 속, 혹은 생명이 캄캄한 동

굴 안에서 움직여 나오는 것과 같은 것을 형상화했다. 안무자는 프로그램 글에서

한 생명이 동안의 잉태과정과 그 연상으로 현실에서의 삶도 그와 같은 알 수 없는

과정의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천장에서 쏟아진 붉은 고추는 신

성한 생명을 위한 액막이가 된다. 신비스러움과 함께 상징적인 의미,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몸을 낮게 낮춘 간략한 움직임만으로 독특한 분위기를 보였던 이 공연은 짧

지만 남다른 김영회의 세련된 미적 감각을 보여주었다.

『나의 대답I』은 여타 창무회의 작품들과 달리 내가 뉴욕에서 보았을 때 안무

의 감각이 다소 새롭다고 여겼다. 마치 현대무용의 즉흥창작을 위한 스터디(study)

의 과정처럼 여성군무진이 서성거리듯 움직이며 다음 움직임이나 흐름을 모색하

는 것과 같은 인상을 줬다. 여기서 작품 제목만으로 그녀 춤의 주요 주제인 실존성

을 얘기하는 것은 무리이다. 오히려의 우리의 전통춤이 가진 자연스런 움직임을 보

여주면서 그 끝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음 새로운 창작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를 자문

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것은 창작의 과장에 대한 반영적 질

문이다.) 옅은 색감으로 된 한지 의상(강민지 의상)이 스치는 소리가 마치 소스란

가을바람과 같은 느낌을 주는 가운데 정석지 • 최민아 • 김주연 • 문소라 등의 아홉

여성 군무진은 그들이 둥글게 모여들어 연풍대 동작을 하거나, 뭉쳐서 그림자처럼

무대의 후면으로 미끌어지듯 움직여 갈 때 그 움직임은 열은 가을 물살 같은 서늘

한 미감(美感)을 주기도 했다.

김철호의 음악 또한 우리의 진통(민속/궁중) 가락과 함께 여성 구음 • 물소리등을

다채롭게 배합하면서, 나름 전통을 자유롭게 소화하고 있었다. 오늘의 시각에서 이

춤은 창작춤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전통재구성무와 같아 보인다. 안무자가 이 지점

에서 돌연 강한 명상성과 엑스타시적 몸짓을 결합한 1988년 『어디만치왔니』로

의 비약은 우리 창작춤사에서 매우 놀라운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90년대 후반에 창작된 『아무도 II』는 강미리의 『류-생명의 나무』, 국수호의

『티벳의 하늘』과 함께 90년대 한국창작춤의 한 정점에 서 있는 춤이다. 장구채

두드리는 것과 같은 증폭된 강한 비트의 반복된 음향속에서 무대 위에 거칠게 잘려

나간 다섯 개의 나무 등지와 그 옆에 움크려 누워 극심하게 머리를 떨거나 버등거

리는 지체(肢體)들, 그 중 하나는 나무 등치위에 앉아 수평을 바라본다. 이어 옅은

하늘 빛 의상의 네 춤꾼들과 다홍및 의상의 여(신숙경)가 등장, 강한 음향에 맞춰

몸을 되튕기듯 허리를 뒤틀어 팔을 감아 반복해서 힘차게 뿌린다. 뿌리와 줄기가

잘려나간 상처난 자연의 생명성, 어떤 희구의 시선과 몸짓, 그리고 신체의 극심한


반동성(反動性)은 모진 환경속에서도 살아남아 새로운 생명의 짝을 키우겠다는 상

징성 짙은 거친 생명의 신음이요, 그 아픈 찬가이기도 했다.

붉은 옷을 입은 신수경이 보여준 반동의 몸짓은 스승 김영희가 가졌던 강도(强度)

에는 미지지 못했지만, 자신으로 관객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공연의 마지막에 죽음

[死]에서 삶[生]으로의 전환과 예찬을 나름 만들고 있었다. 상징성을 띤 잘려진 나

무 둥치는 그녀의 출세작 『어디만치 왔니』에서 효과적으로 쓰여진 물 젖은 톱밥

과 달리 그 자제로서 춤의 주제를 상당 부분 암시했다. 마지막 『아리랑』은 호암

아트홀에서 초연시 매우 홍미로음과 함께 얼마만큼의 아쉬움을 주기도 했다. 그 아

쉬움은 『아리랑』이라는 멜로디 속에 이미 우리 민족의 고난의 삶이 매우 노출되

어 있기 때문이다. 박창수의 음악은 「아리람」이란 많은 멜로디중 한 멜로디를 선

정, 반복해서 날카롭고 길게 에코음을 띠었다. 따라서 안무자로서는 그에 맞는 움

직임을 선정, 효율적으로 배치하기만 했으면 됐는데 그렇질 못했다. 대신 열개의

큰 우산 같은 꽃 송이가 조명을 받아 울긋불긋하게 공간을 환상적으로 채색했다.

나는 거기서 강원도를 거쳐 간도나 연해주, 그리고 중앙아시아로 고난의 행군을 한

우리 선인들의 눈물겨운 삶을 어느 정도 상상했다.

호암아트홀은 삼성홀 보다 좀 작고 집중감이 있어서 공연의 몰입도가 있었는데,

이번 삼성홀은 가로로 길게 퍼진 가운데 큰 열 개의 꽃에 대한 조명 또한 잘 비춰

주질 않았다. 따라서 어ᄄᅠᆫ 이채로운 환상성과 아픔이 승화되는 춤의 맛을 나로

서는 잘 못 느꼈다. 공연의 중간에 가볍게 뜀뛰는 것과 같은 다소 유희적인 움직임

이 있었는데 이 설정은 안무상 흥미를 줬지만 동작들은 조금 어설퍼 보였다. 대신

임희영 • 김희진 • 조혜림 • 조은지 등 여덟 춤꾼들의 춤에 이은 안정연의 마지막 솔

로, 곧 그녀의 낮은 자세에서 강한 표현성을 띤 묵직한 춤이 이 작품에 어떤 호소력

과 무게를 주고 있었다.

네 작품 모두에서 느끼게 되는 김영희의 이채로운 감성과 현대적 감각은 우리 창

작춤의 활동속에서 매우 특별하다. 그녀의 안무에 긴장감을 주면서 실험적 작곡자

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박창수의 음악과 의상 • 소도구 • 조명 등에서 특별한 디

자인을 통해 심미안을 갖고 작품의 표현성과 상징성을 강화해주고 있는 무트 방식

의 독특한 작품 스타일 곧 예술적 앙상블은 스타일 부재(不在)의 한국창작품에 중

요한 자극을 주었다. 이제 무트댄스1~2기의 멤버 모두 어느덧 40대 중반에서 후반

에 걸쳐 있기 때문에 향후 이들의 활동 모두는 우리 창작춤의 흐름에 새로운 변화

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